2.5
2.5 . 오늘, 내 이야기.
오늘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꾸준히 대학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시게 된 뒤로 매번은 아니지만 1년에 두세 번 정도 엄마 대신 몇 년째 맡아오던 일이다. 작년에 너무 바빠 좀 버거워했더니 엄마는 올해부턴 취준생인 동생에게 취업하기 전까진 나 대신 나가라고 했다. 솔직히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 귀찮기도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갈 때마다 매번 용돈을 주시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또 그 용돈이 나보단 동생에게 절실해보여 그러자고 했다. 동생에게 해야 할 일을 상세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게 아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열흘 전이었을 것이다. 그때 할머니께서 진찰 받아야 할 과가 부인과라서 오늘만 내가 간다고 했다.
그날은 할머니께서 병원에 나보다 늦게 도착하셨고, 할머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는 걸 댁으로 걸었고, 집에 홀로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받으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마지막 순간인 것도 모르고 그 흔한 안부인사도 없이 할머니만 찾다가 통화를 아주 짧게 끝냈다. 나에게는 30초가 겨우 넘는 통화기록만 남은 채.
그리고 정확히 열흘 뒤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 병원에서. 발인하기 위해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께 절하고 난 뒤, 엄마는 할아버지 생각나서 다시 이 병원에 못 올 것 같다며 우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황급히 엄마 입을 막았었다.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계속 병원에 다니셔야 하니까. 할머니께서도 다신 안 오고 싶을 병원인데, 살아계시는 동안은 싫으셔도 다니셔야 하는 곳이니까.
오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다시 그 병원에 갔다. 나는 그날, 엄마의 입을 황급히 막았던 까닭이 할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는 걸 알았다. 나도 계속 이 병원에 와야 하니까.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나도 와야 하는 병원이니까.
오늘 차가 많이 막히는 바람에 예약 시간보다 늦을 것 같아서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걸기 전에 할머니 댁이 아닌 휴대전화로 거는 것이 맞는지 여러 번 확인도 했다. 이젠 댁으로 잘못 걸어도 받을 사람이 없단 걸 알아서. 하필 그 시간, 그 병원, 그 과. 전화를 걸면서 버스 안이라 울지는 못하고 속으로 몇 번이고 울음을 삼켰다. 자꾸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할머니의 진찰을 끝내고 댁에 가는 버스에 태워 보내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걸으면서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까 겁도 났지만 제어가 되지 않았다. 가끔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 진료에 따라온 적도 있었다. 신경외과 치료를 받으셨는데 때론 퉁퉁 붓는 종아리를 보여주시기도 했는데, 그 부운 다리나 손을 한 번도 살갑게 주물러 드리지 못했다. 내가 그 퉁퉁 부은 손을 주물러 드렸던 건 돌아가시던 날 뿐이었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말 한 번 살갑게 건 적도 없었다. 그게 후회가 되서, 자꾸 돌아가시기 전 미련으로 남아서. 그 음성이 자꾸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아쉬워서. 할아버지 마지막 목소리였는데.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불러주신 내 이름인데 그것만 희미해져서 울었다.
왜 자꾸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나서야 소중한 걸 알까. 나는 왜 그토록 미련할까.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이제부터 네가 가라고 했다. 이번에도 부인과라 내가 갔다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할머니 돌아가실 때는 이렇게 후회남지 않도록 잘해드리려고, 추억도 많이 쌓아야겠다 싶어서 계속 내가 가려고 했다. 할머니께서 주신 용돈이야 내가 동생과 나누면 되는 거니까. 아무리 바빠도 할머니 병원은 내가 가야겠다고. 운전면허도 따고 차도 사서 할머니 더 편하게 모시고 다녀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한번 가고 나니 이제 더 이상 내가 갈 자신이 없어졌다.
자꾸 그 병원 로비에 서면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날 그 통화했던 음성들이 희미하게, 나에 대한 원망은 아주 짙게. 할아버지가 의사선생님께 증상을 말할 때의 표정 같은 것들. 나란히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다 버스가 도착하면 휘적휘적 걸어가 뒤도 안 돌아보시고 차에 오르시던 그 뒷모습이 떠오른다.
잘 모르겠다. 원래대로 할머니를 위해 계속 내가 다녀야 하는 게 옳을 텐데. 나중에 지금처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게 좋을 텐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 지금 당장은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동생이 취업하기 전 다만 몇 개월이라도. 아무래도 나는 미련스러워서 미래보다 과거에 사로잡힐 뿐인가 보다.
이토록 미련스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