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오늘의 공부

퇴계의 매화시

메이준 2011. 7. 4. 00:57


<병인년(1566, 명종21) 중춘에 소명의 사면을 빌며 예천 동헌에 머물면서 뜨락의 매화에게 묻다>
[丙寅仲春 乞辭召命 留醴泉東軒 問庭梅〕

풍류는 예부터 고산을 말하는데 / 風流從古說孤山
무슨 일로 관아의 뜰로 옮겨 왔는가 / 底事移來郡圃間
그 역시 명예로 그르친 것 알겠노니 / 料得亦爲名所誤
이 늙은이 명예에 시달린다 무시 마소 / 莫欺吾老困名關


<매화가 대답하다>〔梅花答〕

나는 관아의 뜰에서 호산을 생각하고 / 我從官圃憶湖山
그대는 나그네로 운계를 꿈꾸었네 / 君夢雲溪客枕間
한 번 웃고 서로 만남도 하늘이 빌려 주었으니 / 一笑相逢天所借
사립문에 선학이 없은들 어떠하리 / 不須仙鶴共柴關


<기사년(1569, 선조2) 봄에 한성 우사에 있으면서 분매를 얻어 늘 책상에서 대하였는데 장차 떠남에 이 시로 작별하다>〔己巳春 在漢城寓舍 得盆梅 常對案上 將行贈別〕

매선이 있어 쓸쓸한 나의 짝이 되니 / 頓有梅仙伴我凉
소쇄한 객창에 꿈속의 혼이 향기롭네 / 客牕瀟灑夢魂香
동으로 가면서 그대를 데리고 가지 못해 한스러우니 / 東行恨未携君去
서울이라 풍진 속에 고이 간직하게나 / 京洛塵中好艶藏



<매화가 대답하다>〔梅花答〕

도선의 말을 들으니 우리도 쓸쓸해 / 聞說陶仙我輩凉
공 돌아감 기다려 천향도 떨어지리라 / 待公歸去落天香
원컨대 공은 기다리고 생각하는 곳에 / 願公相待相思處
옥설과 청진을 함께 잘 간직하세 / 玉雪淸眞共善藏



시와 해석의 출처는 한국고전종합DB.



퇴계는 매화를 많이 사랑하여 따로 매화시첩을 남길 정도였다. 그가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이 남긴 말은 매우 유명하다.

‘이날 아침에 모시고 있는 사람을 시켜서 화분에 심은 매화에 물을 주라 하였다. 유시 초에 드러누운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는 부축되어 일어나 앉아서 편한 듯이 운명하였다.’
(是日朝 令侍人灌盆梅 酉初 命整臥席 扶起而坐 恬然而逝 )

'매형에게 불결하면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盆梅在其傍 命移于他處曰 於梅兄不潔 故心未自安耳)

얼마나 매화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으며 마치 매화를 자신의 오랜 친구처럼 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선 시들처럼 매화 문답시를 지어 매화와 문답을 나누는 듯 하지만 사실은 자문자답을 통하여 퇴계는 세상에 대한 위로를 받고,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나갔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