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모두 내면에 돈키호테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모두 각자의 풍차가 있다.
-샤갈, 달리, 뷔페전에서
8월 중순에
샤갈을 좋아해서 갔는데, 내가 보고싶었던 샤갈의 그 그림들은 한 점도 없어서...실망했던 기억이
옛날에 샤갈전에 갔었을 때만큼을 기대했던 내 잘못 같기도 하고.
알지 못했던 뷔페가 좋았다. 입체파를 비롯한 다양한 사조가 쏟아지던 시기에 그토록 선과 면을 강조한 심플한 그림체라니. 단순함 속에 섬세함이 깃들여 있는 그림들이라 더 좋았다.
물론 몰랐던 작가를 아는 기쁨이라 더했을지도.
아무튼 저 문구가 무척이나 인상 깊어서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2.
여름 내내 미술관과 사진전에 다녔다. 가는 곳 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조용히 있고 싶어서 미술관을 가는데, 종종 실패한다. 꿈뜨다가 사람 없는 시간을 못 피하는 내 잘못이지 뭐.
아, 근데....어린애들....나도 어릴 적이 있었던 터라 애들 통제 안 되는 거 이해한다. 난 애들 싫어하는 거에 비해 엄청 너그러운 편이다.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애들 시끄러워도 내 지인들 다 인상쓰면서 수군수군거리는데, 나는 그려려니 하는 편이라...애니까 울지...애니까 저러지...뭐 이런 식. 싫어한다기 보단 좀 무관심한 것에 가까운 편이지만.
나도 무척 어릴 때 미술관 갔던 기억이 있어서...내 기억 속 첫 미술관은 초등학교 때 갔었던 피카소전ㅋㅋㅋㅋ이라..그때 나 나름대론 미술선생님따라 조용히 있었는데 말 많았던 걸로 기억...나는 조용히 한다고 한건데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한테 시끄러웠을 수도 있었던 것 같다....암튼 그런 생각 때문에 애들 좀 시끄러워도 이해한닼ㅋㅋㅋㅋㅋ애들...지들 입장에선 무척이나 얌전한 상태일수도 있으니까...울 엄마 생각하면 좋다니까 뭐 하나라도 보여주고 싶은 부모님 맘도 이해하곸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뽁뽁이 신발 너무 하지 않낰ㅋㅋㅋㅋㅋㅋㅋㅋ2번이나 봤다...각각 다른 미술관에서 뽁뽁거리던 그 신발을......유모차도 봤다......
솔직히 뽁뽁이 신발 신는 애나 유모차를 끌고와야 하는 애면, 아이 때문에 미술관 온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아이를 위해서가 맞다면 우스운 일이고) 내가 나중에 아이때문에 미술관을 비롯한 내가 누리던 여유를 못 누린다면 좀 미칠 수도...
그렇다면 그 여유를 그렇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누리려는 어른이 문제인지, 뽁뽁이 신발이나 유모차 보고도 입장시키는 미술관이 문제인지. 1시간의 여유도 보장 못해 주는 사회가 문제인지.
이 내용은 쓸 생각이 없었는데 미술관 갔던 거 떠올리다 갑자기 빡쳐서...
3. 본랜 미술관 갔었던 티켓들 다 찍어서 포스팅 하려고 했는데 몇 장이 사라져서 시들시들해졌다.
실은 카테고리도 읎다.....와칭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나....
4. 황인찬 시인의 시집, 희지의 세계를 사서 돌아오는 밤. 집에 있는 줄 알고 서점에서 볼때마다 지나쳤는데, 시집 펴서 읽어보니 생소해서 안 읽었단 사실을 알았다....그렇게 수 십번의 서점에서 마주했으나 지나친 뒤에야 구매를 했다.
5. 그러니까 그렇게 자연히 우리 집에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나도 모르게 구입하는. 볼때마다 구입해서 2권씩 있는 시집도 있다. 무의식적으로 시인의 이름을 보고 집곤 해서.
한동안 시들하더니 올핸 갑자기 또 책 욕심이 많아져서 시집을 많이 샀다. 자꾸 읽던 시인의 시집만 사는 것 같아서 낯선 이름의 시인들의 시집도 많이 샀다.
나는 오랜만에 그런 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6. 문학이 좋아서 국문과를 왔는데, 공부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문학을 못 누린다는 생각에 서글퍼질 때가 있다. 내가 공부하는 것도 문학인데. 이상하다.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문학, 은 또 무엇인지 모르겠다. 공부하는 문학도 싫어하는 건 아닌데. 내가 하는 공부도 싫은 건 아닌데...아, 그런데 또 요샌 부쩍 공부할 의지도 없고, 너무 꼴보기도 싫고.
실은 내가 무얼 원하는 지 모르는 사람....
7. 그러니까 친구들한테 난 장미향 싫어! 하고 외쳤는데,
나는 내가 쓰는 핸드크림 중 3개나 장미향이었고.....
남들은 진짜 향때문에 싫다하는 장미향 카스테라랑 장미향 마카롱을 엄청 좋아하고.
아, 근데 장미향 싫어하는 거 맞는데.....아무도 믿어주질 않아....
이런 모순적인.
8. 근래 알게 된 지인들 중에 둘이나 그런 사람이 있다.
같이 대화하면 되게 짜증나고 다신 말도 섞고 싶진 않은데, 또 어느 순간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평생은 아니어도 꽤 오랫동안 봐야하는 지인들이라 좋게좋게 지내고 싶은데,
함께 하는 시간들이 좋았다가 지쳤다가 한다.
평생이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이 복잡한 심정을 씹어삼킬....그러다 정 못 견디면 농담처럼 '너 짜증나'라고 웃으면서 말할 나란 것도 안다. 그렇게 농담처럼 던지고 상대가 상처받든 말든 신경 안 쓰겠지. 화법이 농담일테니까.평생 볼 것도 아닌 인맥 좋게좋게 마무리 짓고 싶으니까..근데.....어.....이미 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안다. 근데 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이런 나는, 선/악으로 결정된 내가 아니라 내 경험에서 한 두번 깨지거나 다친 뒤에 나온 나니까.
그 두 명의 지인뿐만 아니라 몇몇 사람이 있다. 내게 모순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싫은 게 아닌데 같이 하는 시간을 견딜 수 없게 하는 사람들. 또 죽어도 같이 있는 게 싫다고 느끼다가도 또 막상 견디면 그렇게 나쁘지 않았네..이런 감정을 만나는 시간 내내 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싫은 이윤, 그런 모순적인 감정이 드는 것 자체나, 견디지 못하게 짜증나는 시간들 보다......그런 감정이 드는 내가 나쁜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착하고 싶은 사람인데. 그 사람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게 악의 없는 이 사람을 못 견뎌하는 내가 나쁜 사람 같아서 싫어진다. 왜 나를 나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어쨋든 내가 나쁜 거겠지....
9. 가을이 다가왔다. 한 살 또 먹을 게 다가온다. 이젠, 정말 모르겠다. 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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