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의 노래를 듣는 새벽. 나는 자꾸 나의 우울이 조금 마음에 드는 사춘기 소녀처럼 내 우울에 자꾸 빠진다. 우울보다는 속상한 마음이 더 크고 마음에 들기 보다는 답답한 것이 더 크지만. 때론 세상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 나를 못 견디게 만들때가 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나는 허공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마구 발을 저어대는 사람 같다고 스스로 느껴지게 한다. 왜 만화에서 꼭 절벽과 절벽 사이로 뛰어들면 바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한 동안 허우적 대다 뚝 떨어지는 장면처럼. 차라리 뚝 떨어지면 시원하게 죽기라도 할 텐데 간절히 나뭇가지 하나 붙들고 낑낑.
나의 어떠한 잘못도 없이 사람들이 나를 뒤틀어 볼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나의 잘못인가. 눈물이 난다. 나는 그토록 잘못된 사람인가. 답답하다.
100년 전에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을 만났다.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이 지구에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좀 설렌다. 그 사람이 나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내는 기분이다. 세상은 돌고, 오늘 지구도 돌고. 백년 전의 사람이 그토록 원하던 留名을 내가 조금 실현해주고. 오늘 나의 고민도 100년 뒤에 누군가가 알아줄까. 100년 뒤에 누군가도 어느 밤에 울적한 마음에 밤을 지새우겠지. 어쩌면 일주일 뒤면 스스로조차 기억도 나지 않을 감정 때문에, 오늘하루 만큼은 무척이나 속상해서 퉁퉁 부운 눈으로 내일 아침을 걱정할지도 몰라. 그런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내가 그래서 아마 고전이, 옛 것이 좋은가 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비슷하게 살아왔고, 다르게 살아왓고, 기록을 남겼고, 위로 받았고, 나를 위로해준다. 누군가도 나에게 그러겠지. 누군가가 나 대신 아프지 않는다 해도, 나보다 더 아프지 않는다 해도, 그래도 괜찮다.
가끔씩 누군가 나 대신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 대신 지하도를 건너지도 않고, 대학 병원 복도를 서성이지도 않고, 잡지를 뒤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사실이 겨울날 새벽보다도 시원한 순간이 있다. 직립 이후 중력과 싸워 온 나에게 남겨진 고독이라는 거. 그게 정말 다행인 순간이 있다.
허연,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중.